

노르스름한 빛을 띤 백사장에는 파라솔로 만들어진 섬이 자리하고 있었다. 흰색과 주황색이 불규칙한 얼룩무늬를 이루고 있는 파라솔은 둘레 가장자리의 장식천을 바닷바람에 팔랑거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 금붕어 같았다. 그것도 덩치 큰 청년과 가느다란 몸의 여인을 한꺼번에 삼켜버릴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금붕어였다. 금붕어의 몸에 가려져 드리워진 그늘의 바닥은 흰 돗자리가 메꾸고 있었다. 옅게 파란 무늬가 들어간 그 돗자리는 모래사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두 사람의 몸이 데이지 않게 막아주고 있었다.
"바다, 시원해 보이네."
"그렇군요. 좋은 푸른빛입니다."
"하지만 여기는 여전히 더워."
"여름이니까요. 그늘을 만들어도 더운 바람은 어쩔 도리가 없지요."
역시 그렇구나, 라고 혼잣말하듯 대답하며 사니와 키리히메는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 상반신과 무릎 위를 한 겹 빙 둘러 감은 하얀 수건이 꿈틀거렸다. 미처 수건 안쪽에 들어가지 못한 아래쪽 다리가 교차하고, 두 발이 서로 보비작거리며 그늘 밖을 콕콕 찌르다 들어왔다.
톤보키리는 일부러 제 앞머리를 세게 쓸어올렸다.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 기어다니는 듯한 멋쩍음이 영 가셔주질 않았다. 그 자신이 현세의 사람들이 걸치는 수영복을 걸쳐 다리를 전부 드러내고 있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주인과 서로 어깨를 맞닿은 자세로 앉아있기 때문인지,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심장 안쪽으로까지 들어오려는 간지러움을 털어내려 그는 억지로 결론을 맺었다. 분명 눈앞에 펼쳐진 저 바다 때문이다. 창인 그에게 바다는 마냥 달가운 곳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톤보키리는 파라솔의 기둥을 꾹 잡았다. 모래가 비벼지는 소리가 들리가 키리히메가 그를 흘끗 돌아보았다.
"톤보키리?"
"아뇨,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주군께서는 계속 여기에 계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톤보키리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키리히메는 금방 알아차렸다. 저 멀리 해변에는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흩어져 놀고 있었다. 그녀와 면식이 있는 사니와들이 각자가 데려온 근시들과 함께 휴가를 즐기는 것이었다. 해변에서는 수박 깨기를 하는지 머리가 긴 남사 한 명이 방망이를 손에 든 채 우왕좌왕했고, 그를 둘러싼 서너 명의 사니와와 그보다 수가 한 명 적은 남사가 와와 무언가 외치고 있었다. 거기서 조금 떨어져 물 쪽으로 눈을 돌리면, 물장구를 치거나 서로에게 물을 튀기는 이들도 있었다. 유난히 키가 큰 사니와 한 명이 자신보다 키가 작은 아담한 키의 남사를 번쩍 들어올려 바닷속에 내동댕이치자, 키리히메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커다란 물보라가 일었다.
키리히메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물론 초대받은 몸으로서 한 번은 얼굴을 비추어야겠지만, 솔직히 그들처럼 허심탄회하게 바닷속에 뛰어들어 놀기에는 아직 한 걸음이 부족했다. 수건 아래 가리고 있는 익숙치 않은 옷차림도 원인 중 하나였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이유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톤보키리도 그것을 눈치챈 것인지 더 묻지는 않았다. 그의 주인은 강에 던져진 채 생을 마감한 과거가 있었다. 딱히 물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걸리기는 하겠지. 그는 파라솔의 기둥을 세게 틀어쥐며 한손으로 돗자리 밖의 모래를 움켜쥐었다. 뜨겁지만 고운 모래가 억센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어와 무너졌다.
"굳이 무리하여 오실 필요는 없지 않았습니까?"
"무리한 적은 없어. 아는 사람들과 노는 건 싫어하지 않고, 바다도 보고 싶었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말끝이 흐리는 톤보키리를 키리히메가 흘끗 살폈다. 곧 그녀는 팔에 얼굴을 묻듯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그 고개를 들어 바다를 내다보았다. 쏴아 하고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가 백사장을 연신 훑어내리고 있었다. 채도 낮은 파란색 물이 경계선으로 다가오며 점점 색이 옅어지고 이읔고 백사장 빛이 되어 스며들고 밀려나갔다. 그 모습을 파란 두 눈에 담고 있던 키리히메가 이내 입을 열었다.
"바다는 강과는 다른 것 같아."
"그렇습니까?"
"응. 여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좀 더 포근하다고 해야 할까, 깊다고 해야 할까... 신기해. 흐른다기보다는 소용돌이친다는 느낌이고."
주인의 시적인 감상을 들은 톤보키리는 그 자신의 눈으로 바다를 내다보았다. 멀리까지 펼쳐진 바다는 확실히 아득할 정도로 깊어 보였다. 포근하다는 말에는 별로 동감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자신이 본디 철제 무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바다는 깊지요."
"톤보키리는 바다가 싫어?"
"딱히 불호의 감정은 없습니다만, 무기에게 바다는 두려운 곳이기도 합니다. 소금기는 철제 무기에게는 천적이기에."
"지금은 사람의 몸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키리히메는 수건 아래서 빼낸 손으로 멀리 바다를 가리켰다. 기운찬 청년의 모습을 한 남사가 제 주인을 한팔에 끼고 바닷속에 첨벙 뛰어드는 것이 보였다. 물보라가 높이 솟는 것을 본 톤보키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멋쩍게 웃었다. 확실히 지금 그는 인간과 비슷한 육체를 지닌 몸, 소금기를 머금은 물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자. 자기 자신의 고지식함을 가볍게 탓하며, 톤보키리는 한숨을 뱉었다. 더운 숨결이 열기 가득한 공기중에 스며들고, 구레나룻을 타고 땀방울이 떨어졌다.
대화가 끊기자 파도 소리가 들어왔다. 지치지도 않고 밀려왔다 돌아가는 바다는 시원해 보였지만, 그 때문에 바다 밖의 공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톤보키리는 파라솔 기둥을 잡은 손을 놓으며 재차 숨을 뱉었다. 자신이 이 정도인데 주인은 얼마나 더워하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톤보키리는 멀리 가게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 가게, 분명 빙수 같은 음식도 팔았더랬다. 주인의 눈 색을 닮은 파란 시럽을 끼얹은 것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 키리히메가 먼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주군?"
"바다, 들어가 볼까 봐."
"괜찮으시겠습니까?
톤보키리의 목소리에는 불안이 묻어나 있었다. 여전히 몸을 수건으로 가린 키리히메는 그를 돌아보더니 부드러이 웃었다.
"바다는 강이랑 다른 것 같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파라솔 밖으로 걸어나왔다. 맨발이 백사장의 뜨거운 모래에 닿자 그녀는 깜짝 놀란 듯 팔짝 뛰더니 이내 종종걸음으로 뛰었다. 바닷물이 어루만지고 지나가 열기가 식은 지점에 서서야 발이 멈추었다.
키리히메는 선뜻 바닷물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몸을 고치처럼 두르고 있는 흰 수건도 여전했다. 그녀는 한참 우두커니 해변에 서 있다가, 몸을 슬쩍 돌려 등 뒤의 근시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시선은 진자처럼 바다와 제 근시를 몇 번 오갔다. 잠시 후, 키리히메는 심호흡을 하며 수건으로 만든 고치 틈에서 한쪽 팔을 꺼냈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소리가 들릴 리도 없건만, 수건이 몸에서 떨어지는 소리는 톤보키리의 귓가에 잘도 기어들어왔다. 지금껏 흰 수건이 가리고 있던 아래, 가느다란 몸매가 드러났다. 등과 아랫도리를 가리고 있는 초록색 천은 면적이 그다지 넓지 않았다. 잘록 들어가 물 흐르듯 엉덩이로 떨어지는 선, 지금까지는 옷으로 가리고 있어 볼 일이 없던 몸매가 그대로 떠올라 있었다. 키리히메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톤보키리를 돌아보자, 몸이 돌아가 가슴께가 보였다. 초록색 천이 풍만한 언덕을 잡아매 가리고 있었다.
톤보키리는 왜 주인이 지금까지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다른 사니와가 골라준 옷일 테지. 그 자신도 다리를 거의 전부 드러낸 짧은 바지 형태의 수영복을 걸치고 있으니만큼 무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애써 침착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파라솔의 기둥을 세게 움켜잡았다. 파라솔이 우득 기울어지는 소리가 난 것 같았다.
"시원해....."
키리히메는 그 말을 하며 시선을 자신의 발치로 내렸다. 몸이 다시 빙 돌아 바다를 향했다. 그녀는 바닷속을 향해 찰박찰박 몇 걸음을 내딛었다. 발목께까지 바다에 잠기자, 그녀는 조심스레 바닷속으로 허리를 내려 주저앉았다. 어린아이가 목욕물에 몸을 담그듯 바닷속에 다리를 묻은 그녀는 곧 제 주변의 바닷물을 손으로 휘젓기 시작했다. 어떻게 놀아야 할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즐겁게 놀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 갑자기 쏴아 하고 물이 밀려왔다. 천천히 다가오고 생각했던 파도가 갑자기 높아져 순식간에 백사장을 크게 덮쳤다.
"주군?!"
톤보키리가 몸을 일으켰다. 한순간 바다가 제 주인에게 손을 뻗어 끌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는 바닷물의 소금기도 모래바닥의 뜨거움도 잊고 키리히메의 곁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키리히메는 넘어지지도 끌려가지도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앉아 몸을 수그리고 있었다. 아까 전까지 뽀송뽀송 말라있던 얼굴이 바닷물을 흠뻑 머금어 반들거렸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놀랐어...."
키리히메는 늘어진 머리카락에서 바닷물을 쭉 짜며 대답했다. 톤보키리는 그녀의 곁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주인의 모습을 살폈다. 물에 젖은 것 외에는 별달리 다친 곳도 없고, 상처도 원래부터 가슴께에 자리한 흉터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안심하던 톤보키리는 곧 다시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말았다. 주인의 부드러운 몸이 또 눈을 가득 메우려 하고 있었다. 그는 헛기침을 크게 하며 고개를 먼 바다로 향했다.
키리히메는 그런 톤보키리를 올려다보다, 문득 바닷물 쪽으로 발을 쭉 뻗었다. 잘 뻗은 두 다리가 물 속에 잠겨 살짝 떠올랐다. 살살 물장구를 치는 모습은 밝은 햇살과 어우러져 천진난만해 보였다. 찰박거리는 소리 사이에 섞여드는 웃음소리에 톤보키리가 물었다.
"즐거우십니까?"
"그렇네. 시원하고, 좋은 것 같아."
"그렇습니까, 그건 다행이군요."
입꼬리에서 힘을 빼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톤보키리는 주인의 곁에 주저앉았다. 키리히메에겐 앉은 자세에서 다리가 바다에 전부 잠겨드는 깊이였지만, 톤보키리에게는 무릎이 아직도 물 밖으로 올라올 정도로 얕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톤보키리는 주인처럼 다리를 쭉 뻗어 바다를 향해 발을 내밀었다.
'바다도 나쁘지 않군.'
그렇게 생각하는 미카와의 창남사의 무릎에, 흰 머리의 사니와가 참방참방 바닷물을 떠다 뿌렸다.



